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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슈퍼히어로? ‘원더우먼’의 세계에선 이것이 말이 된다

by 칸트10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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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1984'는 코로나 사태 이후 극장 개봉을 한 몇 안 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극장개봉과 HBO MAX 공개를 동시에 시도했고 이 선택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다.

 

영화 '원더우먼 1984'의 시대배경은 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1984년이다. 이 시대설정 때문에 영화는 린다 카터가 주연한 '원더우먼' 텔레비전 시리즈의 2, 3시즌을 연상시킨다. 이 시리즈에 대한 정보가 없는 분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원더우먼' 1시즌은 원작 코믹북이 그랬던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했고, 2시즌 부터는 현대, 그러니까 1970년대 말로 시대를 옮겼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종종 2, 3시즌 에피소드들을 회고조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84년, 다이애나 프린스는 워싱턴 DC에서 고고학자로 일하면서 종종 원더우먼이 되어 사람들을 구한다. 그런데 일하는 박물관에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밀수품인 골동품들의 감정의뢰가 들어오고 그 중 하나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보석이다. 다이애나와 새로 들어온 동료인 바바라 앤 미네르바는 각자 소원을 비는데, 정말로 보석은 그 소원들을 들어주고, 다이애나 앞에서는 1편에서 죽은 스티브 트레버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보석은 맥스웰 로드라는 사기꾼 사업가가 사들인 것으로, 이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원더우먼 1984'는 몇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그러니까 많은 관객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런 영화가 아니었는데?"라는 반응을 보였을 텐데, 그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원더우먼 1984'는 최근 슈퍼히어로 유행의 거의 모든 것에 맞선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데에 별 관심이 없고, 쿨함을 추구하는 데에도 무심하다. 영화의 내용만 보면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이 나오는 교훈적인 옛날이야기에 가깝다. 이는 냉전 말기인 1980년대와 트럼프 시대의 미국과 연결되어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믹북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이니 당연히 초현실적인 액션 영화이다. 하지만 이 액션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일단 원더우먼은 적과 싸워 이기는 데엔 별 관심이 없다. 거의 지구 종말까지 가는 이야기인데도 이 영화의 사상자는 신기할 정도로 적다. 이에 대적할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풀린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오늘부터 히어로' 정도를 들 수 있을 텐데, 로드리게스의 영화는 심지어 어린이 영화다.

 

  '레이더스'를 연상시키는 이집트의 카 체이스 장면을 보라. 총알과 폭탄이 날아다니는 와중에서도 원더우먼과 트레버는 자기와 맞서는 사람들을 많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영화의 최종 액션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라면 이건 안티 클라이맥스였을 것이고 많은 관객들이 실제로 이를 이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원더우먼의 세계에서 이것은 말이 된다. 그리고 이 영화와 원더우먼이 추구하는 방향은 슈퍼히어로 영화 생태계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최대한 비폭력을 추구하는 주인공은 다른 스타일의 다른 액션을 만들어낸다.

 

 

 

  단점을 지적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스티브 트레버의 부활은 걱정만큼 작위적이지는 않았다. 드라마에서 극적 동기를 부여하고 쓰임새도 많다. 하지만 1편에서 완벽하게 이야기를 끝낸 캐릭터를 다시 데려오는 건 여전히 위험한 일이며, 무엇보다 새로 들어오는 캐릭터들의 공간을 빼앗는다.

 

  여기서 가장 손해를 본 건 치타/바바라 앤 미네르바이다. 원더우먼 유니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악역인 이 캐릭터는 트레버 이야기와 다른 악당인 맥스웰 로드의 이야기에 치여 캐릭터 발전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배정받지 못한다. 가끔 이렇게 가볍게 날려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맥스웰 로드는 잘 만든 캐릭터이고 영화는 이 인물을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데, 그래도 너무 많은 러닝타임을 차지하고 후반, 특히 아들과 관련된 장면은 지나치게 신파로 흐른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선택과 집중이 아쉽다. 이런 여유는 텔레비전에서 부려도 되지만 극장용 영화는 사정이 다르다.

 

 

출처 : 엔터미디어  듀나 칼럼니스트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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